개발자로 살아온지 n년차가 되었다. 평범하게 개발자들이 신입으로 많이 들어간다는 중소SI에서 근무를 했었고 생각보다 오랫동안 근무를 했다. 3년은 커녕 1년만 되어도 신입사원들이 많이 퇴사를 하는건 내가 처음 회사를 다닐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바가 없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왜 이직을 오랫동안 하지 않고 오래다녔었는지는 의문이다.
요즘 중소SI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코로나 시기 잠시 개발자 붐이 일어났을때를 제외하고는 취업은 항상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처음 취업을 했을때는 중소SI는 언제나 자리가 남아 돌았다. 예나 지금이나 SI는 악명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디, 구디에 그렇게 넘치는 중소SI에도 자리가 없다고 한다. 뭔가 잘못된것 같다. 정말 역대급 취업 빙하기가 아닐수가 없다.
갑자기 그런 소식을 듣고 나니 내가 처음 중소 SI회사를 다니고 퇴사하기 까지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 써본다.
대기업은 몰라도 중견기업 정도는 들어갈 줄 알았지
군대를 전역하고 3,4학년을 바쁘게 보내서 학점을 따고 취업 준비를 했을때는 그래도 탄탄한 회사, 연봉을 그럭저럭 잘 주는 중견기업 정도는 들어갈 줄 알았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생각은 하겠지.
고등학교 입학할때만 해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당연히 갈 줄 알았지만 2학년이 되면 조금의 현실을 깨닫고 눈을 조금 낮춰 인서울 유명 사립대 정도를 노리고 3학년 수험생이 되면 그때는 대학을 어딜갈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 하는건 거의 대부분 똑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현실은 너무 차가웠다. 대기업 서류광탈은 너무 기본이었고 단 한번 삼성 SSAT는 당시 서류만 내면 일단 볼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에 그거 시험 보러 간것 말고는 아예 대기업 냄새 조차 맡아본적이 없었다.
그나마 공기업은 기회가 있었다. 개발자를 꿈꾸고 컴퓨터공학과를 전공으로 삼았지만 한국사 자격증, OPIc와 같은 어학 자격증 적당히 있었기 때문에 서류는 무난하게 통과가 됐었다. 하지만 면접에서 탈락하고, 인적성에서 탈락하면서 공기업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취준한지 반년도 안지났으니까 TV에서 보니까 뭐 공무원 준비한다고 3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허다한데 반년 정도는 급한것도 아니니까 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난 이런 곳에서 절대 회사 안다닐거야
취준생이던 시절 먼저 취업한 친구와 한번 만난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건실한 대기업에 취직을 했었고 경기도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술을 마실만한 곳을 잘 몰랐다.
그런데 나도 당시 인천에 살았었는데 뭐 아나... 그래서 중간지점에서 만나자고 하다보니 가산디지털단지역 이라는곳에서 만났다.
가산디지털단지에 대한 것은 들은것이 있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개발자가 가장 많이 있는 곳, 중소 개발회사가 가장 많은 곳, 개발자의 희노애락이 사무치게 서려있는 곳 여튼 별로 좋은 소리는 못들었던것 같았다.
그래도 직장인들이 있는 곳이라 술집은 많았다. 그런데 공기부터 무거웠다. 뭔가 술 먹고 그러면 들뜬 분위기가 있어야 할텐데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축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횟집을 갔는데 개발자로 보이는 한 분이 이어폰을 끼고 조용하게 조그만 회 한접시와 함께 술을 하는 모습을 봤다.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한 모습들만 보고 있자니 여기서는 죽어도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난 절대 여기서는 일 안하겠다 라고 했다. 그때는 미래를 몰랐으니 친구랑 나랑 웃고 떠들면서 술 한잔을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내가 어디를 다닐지를 당시는 상상도 못하고 말이다
제발 면접이라도 좀 봤으면 좋겠다
이제는 점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1년동안 취준만 하다보니 점점 현실감각이 사라지는것 같았다. 자취를 했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해서 알바를 하면서 간간히 버는 그 돈으로 어영부영 살 수 있다보니 마음은 급한데 또 한편으로는 마음을 놓고 있는 모순적이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응원해주던 가족도 슬슬 전화를 하면 회사는 뭐 알아봤니? 라는 말이 나온다. 점점 차가워지는 느낌도 든다.
알바비만으로는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몇개월에 한번씩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려 월세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눈치가 너무 보여서 도저히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이래서는 안됐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애당초 포기를 했었다. 이제서야 내 주제를 파악했다. 자기객관화가 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지금 내 값어치로는 대기업은 커녕 중견기업도 못간다 라고
이제서야 눈이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시는 그래도 중소 SI회사들은 자리가 넘쳤다.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개발자로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더 잘 알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온갖 중소 개발사에 자소서를 던지기 시작했다
잡코리아, 사람인, 인크루트
요즘은 개발자 커뮤니티가 굉장히 많다. 좋은 현상이다. 그리고 그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단순한 커뮤니티 성격 뿐만 아니라 취업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구인공고 까지 낸다. 다양한 루트가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가
물론 내가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때에도 다양한 루트가 존재했을수는 있겠지만 난 그런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소서를 여기저기 던져서 면접을 보고 회사를 다녀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잡코리아, 사람인, 인크루트는 정말 좋은 시스템을 가졌다. 자소서 하나만 써놓고 클릭 한번에 바로 지원까지 가능한 원클릭 지원 시스템이 그것이었다.
자소서를 완성하고 눈에 보이는 괜찮다 싶은 회사에는 모두 원클릭으로 넣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해서 거의 100군데 가까이 지원을 한것 같았다. 효과는 좋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면접 제의 전화가 왔으니까 이제서야 뭔가 좀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드디어 취업을 할 수 있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들은 당연히 대부분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해있었다. 내가 절대 여기서 회사를 안다녀야지 하고 다짐했던 그 곳에 내 스스로 발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상이상의 회사들을 보면서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800만원이요? 저 대졸인데요
처음 면접 날짜가 잡혔던 그 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난 당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너무나 설레면서 긴장이 됐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 어떻게 생활하고 돈을 벌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하고 또 모으고 이런 청사진을 그려나가니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와 같이 가서 골랐던 깔끔한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광을 낸 구두를 신고 설레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기로 한 회사로 갔다. 면접 볼때는 검은 양말을 신어 깔끔한 이미지를 줘야 한다고 해서 검은 양말도 새로 하나 구매를 해서 신었다. 택시를 탔을때 택시기사님이 어이구 면접보러 가시나봐요? 할때 네 면접보러 갑니다 하면서 희망에 가득찬 목소리로 이야기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택시기사님이 청년이 장하네 꼭 취업 성공해서 원하는 꿈 이뤄라 라면서 덕담해주신것도 기억이 난다.
회사는 가산디지털단지역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왜 택시를 탔을까 싶은데 여하튼 회사는 생각보다 큰 빌딩을 소재지로 삼고 있었다. 회사 합격하면 나도 이런곳에서 출근하는건가 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갔다.
면접을 봤다. 생각보다 면접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기초적인 수준의 질문이었고 대답을 잘했고 면접은 성공적으로 끝난것 같았다. 속으로 이 정도면 합격일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의 마지막은 항상 "질문하실거 있으신가요"로 끝난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드는게 있었다. 지원하게 되면 연봉 정보를 꼭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중소기업은 면접을 볼 곳이 많기 때문에 그런것은 당당하게 물어보라는 글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 제가 근무하게 된다면 연봉은 어느정도 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면접관들이 서로 수근수근 거리더니 1800만원이요 라는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2800만원을 잘못들은줄 알았다.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연봉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취업이 급하다 한들 그 당시에도 1800만원은 정말 짜다 못해 말도 안되는 수준의 금액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앞자리가 2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 1800만원이면 당시 알바를 다녀도 그것보다는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혹시 내가 고졸로 생각해서 연봉을 그렇게 부른건가 싶어서 아 저 대졸자입니다. 라고 이야기 했는데 면접관이 4년 대졸자 기준으로 1800만원입니다. 라는 대답을 했다. 거기서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회사를 나왔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기억 나는건 근처 편의점 앞 벤치에서 앉아서 절망하고 있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수준의 연봉을 맞춰주는 회사를 찾았다
모든 가산디지털단지 소재의 회사가 그런건 아니겠지만 처음으로 겪은 면접과 회사가 이러니 가디가 소문만 들었지 이정도로 악명이 높을줄 몰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디 소재의 회사 말고는 딱히 지원할만한 곳도 없었다.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내가 요구하는 최소 수준의 연봉을 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정말 미친듯이 면접을 봤던 것 같다. 하루에 2~3번의 면접은 기본으로 봤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에 한번, 점심 시간 막 지나서 한번, 마지막으로 느즈막한 오후 쯤에 한번 이렇게 봤었다.
회사들이 전부 같은곳에 있는건 아니었으니 어떨때는 강남, 어떨때는 가디 어떨때는 송파 별의별 곳을 다 갔던것 같다. 어떤 곳은 다 무너져가는 건물에 직원 아무도 없고 앞으로 자네가 오면 팀장이야 라는 소리를 하는 회사도 있었고 어떤 곳은 들어갔더니 직원 아무도 없어서 어디갔냐고 물어보니 전부 파견갔다고 하는 회사도 있었고 어떤 곳은 굉장히 면접을 고압적으로 보는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회사들이 내가 요구하는 수준의 연봉을 맞춰주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이 시기에 내 주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바라지는 않았고 중소기업이 줄 수 있는 평균적인 연봉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그 마저도 안주는 회사가 너무 많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 곳에서 면접을 봤더니 내가 생각하는 연봉 정도를 맞춰줄수 있다는 회사를 찾았다.
그럼에도 찜찜한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취준을 하기도 지쳤다. 여기를 다니기로 결심하고 입사하겠습니다 라고 한뒤 며칠 뒤 그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